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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과 이중화 사회의 기원

2018.02.27 10:07

[주진형님의 글을 스크랩]

https://www.facebook.com/jinhyung.chu/posts/836698486473544?pnref=story


<헬조선과 이중화 사회의 기원>

식민사학을 극복한다는 명분 아래 한국의 역사학계는 조선 사회의 후진성 또는 봉건성을 지적하는 연구를 꺼리는 경향이 있었다. 상당수 학자들이 후기 조선 시대에서 자본주의 맹아를 찾으려고 했다. <조선후기농업사연구>로 유명한 김용섭이 대표적인 학자다.

이에 반해 조선시대 노비의 인구비율이 30%가 넘었다는 점을 근거로 조선을 노예제 사회로 규정한 역사학자가 워싱턴 주립대학교에 있던 제임스 팔레다. 그는 한국의 학자들이 주장하는 맹아적 요소가 자본주의의 성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극히 작았다고 주장했다. 그렇다고 그가 일제 식민사학의 정체론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외국에서는 팔레의 연구를 높이 평가한다. 이에 반해 한국 내 학자들은 그를 불편해한다. 뉴라이트 역사학자인 이영훈도 조선의 노비가 서구식 노예라기 보다는 농노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나는 팔레의 해석에 동의하는 편이다. 그리고 조선사회의 신분제와 관료제도가 지금 한국 사회의 제반 문제 뒤에 있다고 생각해왔다.

내가 이 생각을 한 지는 꽤 오래 되었다. 젊은 시절 위에서 언급한 김용섭 선생의 책을 읽고 그 논리의 허술함에 놀란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내 학사 졸업 논문 주제이기도 하다. 당시에는 팔레처럼 조선을 노예제 사회로 규정하는 사람이 없었지만 조선사회에 노비 인구 비중이 높았다는 것은 70년대에도 알려져 있었다.

나는 이것들이 뭔가 모순이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모리스 돕(Mauris Dobb) 과 폴 스위지(Paul Sweezy)등 막스 학자들이 자본주의 이행 논쟁을 했을 때 자본주의 이행의 중요한 기점이 된 것은 농노 신분으로부터 해방된 자작농의 존재 여부였다. 이에 비해 엘베 강 동쪽 지역에서 자본주의 이행이 안 되었던 원인은 그 지역이 지주계급에 의한 농노사회였다고 했다.

조선사회에, 농노가 되었든 노예가 되었든, 노비가 19세기 말까지, 심지어 실질적으로는 20세기 초까지 있었던 것을 한국 학자들이 무시하고 자본주의 맹아론과 내재적 발전론을 주장하는 것이 나는 그때도 이상했고 지금도 이해하기 어렵다. (박경리의 <토지>는 노비 출신이라는 신분적 굴레를 중요한 모티브로 썼다.) 노비가 존재하기만 해도 자본주의로 이행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조선은 중국보다도 더 시대착오적인 방식으로 유교를 지배계급의 신분사회 유지를 위해 쓰던 사회였기 때문이다.

그 얘기는 그만하고, 나는 조선의 양반계급의 행태와 지금처럼 이중화된 한국사회(Dual Society)의 내부자들이 보이는 행태에 유사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둘 다 명분은 그럴듯하게 내걸지만, 실상은 자기들의 계층 이익 유지가 최우선이다. 현대 한국사회에서는 고시를 통해 변호사와 관료 공급을 통제하고, 의사협회를 통한 의사 공급을 제한하고, 민간부문보다 생애 임금이 더 높고 시장의 규율과 경쟁에서 자유로운 공무원이나 공기업 직원이 되려고 젊은이들이 몰리고 있다.

이들은 일단 안에 들어가면 자기들만의 성을 쌓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국가의 권력체제(Governance)를 이용해 내부자들 만의 특권과 신분을 유지하려고 하던 조선시대의 양반들 행태와 그리 다르지 않다.

나를 갖고 보수 또는 우파라는 사람들은 조금 혼란스러울 것이다. 요즘 우파는 이런 생각도 하니 말이다. 그들이 나를 우파로 모는 이유는 내부자들이 한국 노동시장의 이중화와 경직성을 이념적으로 포장해 자기 이익을 옹호하는데 익숙해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어 작년 세액공제 파동에서 가장 시끄럽게 들고 일어난 사람들은 근로 소득 상위 10%였다. 나는 지금도 처음 정부 정책이 올바른 방향이었다고 생각한다.

최근 이러한 한국 사회의 이중화를 한마디로 축약한 표현으로 유행하는 것이 바로 '헬조선'이다. 조선과 현대 한국사회가 공유하는 것이 많다는 인식이 밑에 깔려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아래 책은 그러한 인식을 본격적으로 처음 드러낸 책이 아닌가 싶다. (그도 팔레를 인용하고 있다.)

'퇴계 이황의 장남은 360여명의 노비를 거느렸고, 문신이자 시인인 윤선도 집안에는 700여명의 노비가 있었다. 15세기에서 17세기 고위 관료를 지낸 양반의 경우 대체로 500~600명의 노비를 보유했다.” 땅과 노비로 상징되는 경제력을 지닌, 대지주였다는 말이다.'

'이 때문에 제임스 팔레 같은 연구자는 “1850년 무렵 미국 남부에는 34만7,000여명의 노예 소유주가 있었는데 100명 이상 노예를 소유한 사람은 1,800명을 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그보다 더한 조선사회를 노예제사회로 규정하는 게 맞다고 했다. 상공업 발달로 조선후기를 근세라 불러야 한다고 흥얼대던 일반적 상식에 철퇴를 가하는 셈이다.'


[신문기사]


[댓글들]


남충현 정조시대가 조선의 르네상스라고 하나 같은 시기 유럽에선 프랑스혁명이 일어났고 세계 인권 선언이 나왔지요. 서구와의 접촉 없이도 조선 등 동아시아 국가들이 독자 근대화를 했을 가능성은 중국과의 접촉 없이 화약과 종이 나침반을 유럽에서 독자 발명했을 가능성만 못하다고 봅니다. 

유교의 가장 큰 문제는 성선설과 덕을 강조한 나머지 아래사람들의 권리의 문제를 윗사람들이 윗사람다워지고 도덕적으로 자비로워지면 된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노비 문제도 주인이 노비를 아끼고 자비롭게 대하라는 식의 접근이 많았을겁니다. 윗사람이 이기적이다는걸 전제로 거기에 대해 방어책 및 계약 관계를 세우기보단 윗사람이 자비로워질 것, 좋은 윗사람이 될 것만 주로 강조했으니까요. 문제는 이런 온정주의적 시각은 현재까지 이어진다는겁니다.

이태경 예전 읽었던 글을 기억하자면, '세조'를 기점으로 모든 싹이 사라졌다고 하더군요. 쉽게 말해, 위에 장유성 선생님이 말씀하신 귀족사회가 고착화된 것이, 공신의 이권이 주된 이유라고 하더군요. 거기에 더해서, 성리학이 자리잡으면서, 남충현님 말씀대로, 아예 자생적 가능성조차 흔들려버렸다고.

최동석 조선을 근대국가라고 이해하는 것은 좀 너무 많이 나간 것 같군요... 조선왕조가 5백년 정도 유지되는 것은 왕국으로서 그 나름의 합리성을 가지고 있었다 치더라도, 근대국가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자본주의 맹아 같은 얘기도 그냥 하는 소리로 보입니다. 중요한 것은 전근대냐 근대냐의 문제라기 보다다는 그 시대의 지배이데올로기가 무엇이냐일 것입니다. 

유가사상의 지배이데올로기는 인의예지, 삼강오륜, 충효 등의 윤리도덕으로 포장되어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아직도 우리나라는 근대화되지 못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물질적 경제적 측면에서는 상당부분 서구화된 근대문명을 따라잡았지만, 우리의 정신세계와 문화적 습속은 유교 전통의 비합리성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우리 사회에는 대화와 토론이나 협의와 합의의 과정을 무시하고 윽박지를 수 있는 권력의 힘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고 있지요. 근대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정신은 헌법과 법률을 지키는 것입니다. 즉 약속을 지키는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일단 권력을 가진 사람은 그런 거추장스러운 것을 다 개무시해버리죠. 피라미드 정점에 있는 일인의 일방적인 명령으로 조직이 움직이고 있어요. 이런 나라와 사회를 어떻게 근대화되었다고, 계몽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어요. 

근대성을 이해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겠지요. 근대성이란 곧 개인이 주체적으로 자기(self)의 정체성을 확립하여 타자(others)와의 관계를 계약정신에 따라 행동하는 경향을 말합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런 근대성, 즉 개인이 주체적으로 자기를 인식하는 경향은 한중일 삼국에서는 20세기 전반까지도 거의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일본에서 메이지 유신 개화기에 영어의 individual이라는 단어를 어찌 번역해야 할지 아주 어려워했으니까요. 유가사상의 핵심은 집단의 계층구조를 공고히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개인주의적인 합리성은 거의 생겨나질 않았습니다. 

오늘날에도 통용되고 있는 충효와 같은 단어는 개인주의 사상과 이치에 전혀 맞지 않는 개념입니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개인은 없고 집단만 있을 뿐이죠. 동창회, 향우회, 종친회 등... 일단 직장에 들어가면 사회전체를 보지 않고 자신이 속한 조직의 이익을 위해 복무합니다. 개인으로서 주체적으로 자기를 실현하는 것(self-actualization)이 아니라.조직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것을 매우 중요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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